<양평여성-1> 니트의 거장, 이의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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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황실의 공주가 입던 드레스를 복원한 원피스와 아프리카 피라밋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니트로 만든다면 상상이 될까?
억압없는 자유로운 선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루고, 상상을 초월한 니트 혁신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이의신 디자이너(여 66세 사진).
학창시절 니트와는 상관없이 화가가 꿈이었던 이씨었지만 아버지가 숨진 후 가족들에게 닥친 어려움은 그녀의 화가란 꿈을 이어줄수는 없었다.
시작은 평범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우연히 니트로 만든 신발과 양말, 조끼, 옷 등을 직접 만들어 입혀주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주변의 반응이 좋아지자 1970년 MBC가 주최한 제1회 아동복 콘테스트에 출품, 동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1971년 제2회 아동복 콘테스트에서는 최우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으면서 이 선생은 ‘니트의 거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너무도 어려웠던 시절, 실을 살수 없는 형편이기에 구두방과 가방집을 오가며 자투리 실을 모아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 줬던 가난의 경험이 오히려 평생토록 니트와의 끈을 이어주지 안았을까” 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의 니트를 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후 1970,80년대 최고의 연예인과 모델들은 그녀의 독창적인 니트 옷을 선호하게 되고 이 씨는 그녀만의 독특한 게이지법을 연구해 니트계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갔다.
이씨에게 니트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와 시련, 그리고 희망들을 두 바늘로 한코 한코 완성해가며 그녀의 아픔과 때론 희망을 함께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해 왔다.
왕성한 활동 속에서 그녀는 1990년대 잠시 활동을 멈추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94년 남편이 사망한 후 그녀의 외가인 양평으로 귀향했고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일생의 벗이기도 했던 니트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그것은 양평의 수많은 니트 수제자를 배출하며 지난 2000년 이후 6회에 걸친 전시회와 수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그녀에게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셈이다.
이씨의 니트 기법은 의미 없는 신축성만을 요하는 일반 니트와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인체의 해부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진 특유의 게이지법은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원형을 절개하고 니트에게만 있는 고유한 특성인 ‘자유로운 선’에 가죽과 모피 등을 첨가하는가 하면 스스로 개발한 재료는 물론 염색기술을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라 설명한다.
이씨는 한국에서 펴낸 60여권의 니트 관련 책자가 있지만 이를 세계에 더욱 알리기 위해 불어와 일어로 된 책을 출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씨의 마지막 포부는 양평에서 특색 있는 니트 생산고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김송희 기자
YPN뉴스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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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양평애님의 댓글
양평애 작성일양평에 훌륭한 여성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네요...:)
앞으로 자연과 첨단의 조화가 필요한 양평에 큰 기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성의 맵시님의 댓글
여성의 맵시 작성일그렇습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으십니다.
묵묵히 각자의 분야에서 인재양성과 지역의 후배여성을 배출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고장을 위해서 애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