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히터 9.0보다 무서운 국제사회의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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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총리의 “세계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위기” 발언과 미국 지질 조사국의 “일본 열도 2.4미터 이동” 발표가 이번 대지진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다. TV 화면에 비치는 참상은 전쟁터를 방불하고, 인구 1억 3천만이 살고 있는 국토전체가 몇 미터나 밀려날 정도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땅덩어리가 표면만 견고하지 내부는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불과 몇 센티의 암세포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인간처럼 지구 자체가 한없이 위태롭고 나약해 보인다. 기실 지구표면은 대륙과 바다로 살짝 덮여 표면만 냉각되어 있는 것이지 지구 중심은 고온의 액체 상태라고 한다. 일부 물리학자들이, 대륙이란 펄펄 끓는 냄비 속에 떠있는 얼음판 조각과도 같은 운명이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기에 걸리거나 혹은 어디를 다치게 되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가 완치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딴 데에 정신 팔고 사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대재앙에 부닥치면 잠시 자연의 위력이나 지구의 실체에 관심을 두었다가 이내 딴 데에 정신 파는 것은 인류의 속성이며. 일본은 아직 시신 수습은커녕 자국민의 주검이 몇 만에 이를지 파악도 덜 된 상태인데, 다른 나라들은 벌써 주판알 튕기는 소리에 요란하다. 정유시설이 파괴되었으니 원유 소비량이 줄 것이라는 발 빠른 예측이 원유 값을 하락시키고, 많은 산업 분야가 중단되고 재가동에 상당한 기일이 소요되니 어떤 점이 불리하고 어떤 점이 유리한지를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마치, 1,2백명 규모의 구조대를 파견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의무는 다 했으며 이제 남은 것은 장삿속이라고 떠벌리듯이 말이다. 이웃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나라 역시 이번 일본 대재앙으로 인한 손익 계산에 분주하고, 일본열도가 방패막이 되어 쓰나미를 막아주며 일본의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도 편서풍이 불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안도한다. 어느 공중파 방송에서는 한류에 지장이 없을까 우려된다는 한가한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물론, 이웃나라에 대재앙이 덮쳤다고 무작정 애도만 하면서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대처해야 유리한지 따져봐야 하겠지만, 꼭 그렇게 요란을 떨 필요가 있을까. 불행에 겨운 타인 앞에서 잇속을 셈하는 속내를 훤히 드러내는 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는 물론이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금기시해야할 기본예의에 속하지 않겠는가.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들의 이번 대지진이 통쾌하다는 식의 악플과, 어떤 종교 지도자의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라는 발언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낯이 뜨겁고, 일본국민 모두에게 대신 무릎 꿇어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더불어, 유래 없는 참사와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질서를 준수하는 일본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존경을 표하고 싶다. 오열에 휩싸인 일본을 저울에 올려놓고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쁜 국제사회의 냉혹한 이면을 바라보며, 과연 지금 인류가 원시시대를 벗어나 문명기에 도달한 것인지 깊은 회의에 빠져 드는 것을 잠시 유보하면서 말이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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