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도 못 막는 관재(官災)
페이지 정보
본문

가축 돌림병에 불과한 구제역이 국가적 대란으로 번졌다. 근본적 원인은, 속이야 썩어 문드러지든 말든 겉모습만큼은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려는 대한민국 관료의 고질병에 있다. 알량한 구제역 청정국 간판에 매달리다 이 땅의 가축 5분의 1이 넘는 생명체를 무의미하게 살생하고 잔인하게 생매장했다. 20억원 규모의 수출물량을 유지하려다 2조원의 혈세를 허공에 날렸다. 2조원이라는 수치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가공, 유통, 관광 분야파급효과, 축산농가와 관련 인력의 수입 상실 등을 따진다면 수십 배의 피해액 산출로 이어진다. 중앙부처 책상머리를 지키는 몇몇의 오판으로 이 나라 공무원 모두가 한겨울 내내 생고생을 했고, 이 나라 국민 모두의 식탁이 빈곤해졌다. 다만 방제약품업체와 육류 수입상이 때 아닌 호황을 누렸을 뿐이다.
그나마, 한심한 중앙부처의 지침을 간파해낸 경북 예천군 말단 공무원 몇몇이 크게 위안이 된다. 정부 매뉴얼대로만 하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침출수 직접 저장, 악취 저감 필터 설치, 500두 이상 한 장소 매몰 엄금 등 예천군만의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온 나라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2차 피해를 사전에 완벽하게 차단해냈다. 매몰장소당 단 몇만원의 추가비용으로 환경오염 자체를 막은 것이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정부 매뉴얼에만 코를 박고 한 구덩이에 7천마리의 돼지를 생매장한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되며, 과연 지자체 공무원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생매장한 사체가 팽창하여 지상으로 불거져 나오고, 비닐막을 뚫고 흘러나오는 침출수가 퇴비가 되니 안 되니 옥신각신하는 사이 나라 밖에서는 세포줄기를 활용한 육류 생산이 초읽기에 접어들고 있다. 소나 돼지의 근육세포를 탯줄에서 줄기세포와 섞어서 배양하는 신기술인데, 이미 2001년 이래 나사는 우주선에서 칠면조 고기를 배양해서 우주비행사들에게 먹이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배양육 기술이 개발되어왔으며 네덜란드 정부는 내년부터 배양육 닭고기 판매를 실시한다고 공식발표한 바 있다. 배양육의 최대 장점은 대규모 축산이나 살생이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가축의 조직 일부를 고통 없이 떼어내 대량의 육류를 만들어내는, 마치 씨앗을 뿌려 더 많은 씨앗을 거두고 그 씨앗을 키워 풍족한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로이터 통신은 배양육이 조만간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관련학자들은 현재와 같은 방식의 축산은 머잖은 미래에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줄기세포 분야는 세계 정상급이라는 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뒷짐만 지고 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하긴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도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면서도 책임은 엄한 데 떠미느라 바빠 죽을 판이니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나 있을까 싶다.
사람 사는 세상은 경황이 없어도 계절은 어김이 없다. 초봄의 볕이 이리 따사로우니 곧 구제역도 물러 갈 것이고, 구제역 차단에 총력을 기울였던 양평도 한숨 돌릴 것이다. 재발방지와 재발할 경우 피해최소화 방안에 몰두해야 할 것이며, 삶의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리는 피해 축산농가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지침에 맹종하는 수준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더불어 양평군 차원의 가축 위령제도 고려해봄직 하다. 종교적 해석을 앞세우지 말고, 피해 당사자의 아픔을 나누고 고초를 겪은 공직자와 자원봉사에 나선 군민에게 감사를 전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은 가축의 명복을 비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싶다. 그 자리가 재앙을 딛고 다시 힘차게 일어서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 이전글(칼럼) 리히터 9.0보다 무서운 국제사회의 계산기 11.03.14
- 다음글(칼럼)양평군의 7mm 너트 11.02.15
![]() |
댓글목록
이름하여님의 댓글
이름하여 작성일내일은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한강변의 많은 량의 생석회는 그대로 방치되어
흘러 흘러 많은 고기떼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지요
아! 재앙은 또다른 재앙을 낳는다고요
우리 모두 구제역을 이겨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