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술도 양평의 특산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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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재 양평미협에 가입된 미술인은 400여명에 이른다. 미가입 미술인도 꽤 많아 전체 양평 거주 미술인이 적게는 600여명에서 많게는 1,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양평인구 140명 혹은 100명당 1인이 미술인이라는 얘기이며 이러한 인구분포는 대한민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통계수치라고 한다. 이렇게 미술인이 늘어난 20여년 사이 양평의 지역이미지는 변천을 거듭했다. 겨울이면 소주 얼어터지는 동네에서, 카페와 모텔이 지천인 곳에서, 예술인 많이 사는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이 변화가 양평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밖에서 바라보는 양평의 모습이 예전보다는 훨씬 우아해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겉모습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 반론할 수 있겠지만, 서울수도권 주민이 가장 선호하는 전원생활공간으로 양평을 꼽는 데에 순기능 역할을 해냈음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 12월 양평군립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오는 2월 15일까지 개관기념전을 펼치고 있는데, 중앙화단이나 언론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다. 대도시의 관립미술관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내용이 알차다는 게 중론이다. 40일 남짓 누적 관람객 5천명을 돌파했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양평과 미술이 서서히 서로에게 물감처럼 번져가고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평군립미술관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은 듯하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80억원을 들여 미술인을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와 그깟 입장료로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겠느냐가 부정적 견해의 대종을 이루는데,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우선, 미술관은 미술인을 지원하는 시설이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외에는 미술인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이지만, 미술관은 미술인의 공간이 아니라 관람객의 공간인 것이다. 미술관을 영리시설과 동일화하는 경제관념도 옳지 않다. 미술관에서 생산되는 가치는 손으로 셀 수 있는 성질보다는 마음에 담아둬야 할 성질이 훨씬 더 많은 때문이다.
양평군민뿐 아니라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술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로 여기며 산다. 그러나 따져보면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미술과 무관하지 않다. 정갈한 그릇에 놓인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기 마련이고, 해가 바뀌어 달력을 갈아 걸 때도 이왕이면 보기 좋은 걸 고르기 마련이고, 양말을 한 켤레 사도 색상이나 디자인을 보기 마련이다. 벼르고 별러 가전제품을 사거나 자동차를 사야할 경우에는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이렇듯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힘을 얻는 진리이다. 보기 좋은 게 더 잘 팔린다는 불변의 진리는 미술이 곧 모든 산업의 주요근간임을 일깨워준다.
양평은 미술을 특산물로 삼아야 한다. 양평의 자산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로 갈고닦아야 한다. 양평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과 공산품의 포장을 미술작품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점의 간판과 건물의 색상 역시 미술의 주요대상임을 각성해야 한다. 자전거도로에서부터 모든 관광자산을 거대한 미술작품을 창조하는 자세로 특화해야 한다. 양평에 이 많은 미술인을 어떻게 양평산업과 접목하여, 양평에 사는 모두에게 이롭게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산업접목을 위해서라도 창작작업환경 개선에 주력해야 할 것이며, 미술작품 자체가 양평을 빛내는 특산품임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양평에서 미술인은 아직 이방인이다. 이사 온 지 10년이든 20년이든 여전히 양평군민이 아니라 서울사람 대접을 받는다. 양평의 배타성에 절반의 책임이, 미술인의 사회성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 양평에서 태어나야 양평군민이라는 옹졸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애향심을 지녀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양평군립 미술관은 양평에 사는 미술인을 양평군민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며, 양평에 사는 미술인이 자신의 창작터전이 이곳 양평임을 되새기는 공간이다. 미술의 문외한이든, 미술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든 양평에 사는 사람 모두가 오가는 길에 한 번쯤은 들려야 할 곳이다. 수준급의 미술관 관람이 청소년 인성교육에 대단히 좋다니까 자녀가 있는 사람에겐 더욱 필수코스다. 저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고, 자신의 작품에 찬탄하는 사람이 내 이웃임을 기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양평에서 사는 즐거움도 커지지 않겠는가.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이왕이면 더 즐거운 양평’으로 이어지면 참 좋지 않겠는가.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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