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평의 푸른 신호등과 붉은 신호등
페이지 정보
본문

지금도 단체로 귀가하는 길에 홍천 불갈비촌이나 이포 막국수촌에서 수저통을 열 때면, 그날 저녁 버스 맨 뒷좌석에서 들었던 민군수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시장기를 조금만 더 참고 양평 들어가서 밥 먹을 걸 하는 가벼운 후회가 뒤따르곤 한다. 필자의 애향심이 부족한 탓인지 먹을 것의 유혹이라는 게 원래 그리 강렬해선지 후회만 되풀이할 뿐 귀갓길에 양평을 코앞에 두고 밥 사먹는 일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양평시장통에 신흥 먹자골목이 북적댄다니 우선 반갑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소주 1병 값이 균일 2천원에다 음식값은 시중가에 20프로 정도 싸다니 더 반갑다. 자욱한 고기 굽는 풍경과 빼곡히 앉은 식객들의 모습이 참 반갑다. 양평 밖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양평시장까지 참고 찾아갈 정도로 맛있고 푸짐한 집들도 속속 생겨날 것 같아 진짜 반갑다.
기대도 무척 된다. 상인들의 자구노력과 민관 협력의 실체가 또렷해 보여서다. 겨울이면 전기장판도 껐다 켰다, 여름이면 에어컨을 틀까 말까 망설일 만큼 손님이 뜸하던 골목길에서 힘겹게 되살려낸 활기가 양평전역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 골목 상인들과, 어렵사리 정부예산 따다가 간판이며 도로정비한 관련 공직자들은 더 부지런 떨어줬으면 좋겠다. 양평시장에 푸른 신호등 켠 정도로 우쭐하지 말고, 양평전역에서 교과서 삼을 만한 큰 성공을 거둬줬으면 정말 좋겠다.
양평시장 푸른 신호등 옆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예고도 없던 미화원의 파업이 그것이다. 군청 각과에서 차출된 공직자들이 순번제로 동원돼 쓰레기대란은 당분간 유예됐지만, 그간 양평환경 미화원들을 향해 무언의 응원을 보내던 읍민의 시선은 차갑게 돌변했다. 사태추이를 주시하던 사람들은 심한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
양평의 미화원은 TV르포에서 흔히 만나는 대학교나 병원의 청소용역 근로자와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엄동설한에 도시락 덥힐 데가 없어 꽁꽁 언 밥을 씹어도 월급은 100만원에 못 미치는 처지가 아니다. 궂은일이긴 하지만, 적정한 후생복지가 뒷받침되며 연봉은 3천만원을 웃도는 어엿한 직업인이다. 소속 용역회사의 비리와 정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자격은 갖췄으되 함부로 읍민을 볼모삼아 본연의 책무를 방기할 권한은 없는 것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통을 나눠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약자계층이라기보다는, 그 정도 수입이면 지금 대한민국 장년층의 선망계층에 가깝다 할 것이다.
파업 이후, 실태를 파악해본 결과 양평군은 할 만큼 했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주)양평환경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위해 채용공고에 경력자 우대와 정년연장을 명시했다. 환경미화원 경력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순전히 눈 가리고 야옹하면서도 해당 근로자 입장을 십분 감안한 고용승계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주)양평환경 노동자들은 무조건적인 100퍼센트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이웃의 불편과 행정력의 낭비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양평군은 법을 준수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그러한 공공기관에 초법적인 요구사항을 고집하는 행동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인될 수 없다. 공공이익과 사회적책무를 아랑곳 않는 집단이기(集團利己)에 굴복하는 일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 법이고 나발이고, 떼쓰고 덤벼들면 무너지고 마는 허약한 권위로 어찌 공공기관의 역할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공동체의 기본이다. 상식은 민심이다. 양평시장 먹자골목은 민심을 따랐기에 박수를 받는 것이고, 미화원의 파업은 민심을 외면했기에 냉소를 받는 것이다. 민심을 거스르고 잘 되는 일을 본 적이 없고 민심을 따라서 안 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주)양평환경 근로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한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 이전글||-칼럼-|| 학조兄… 12.05.30
- 다음글<칼럼> 시속 250km로 달리는 양평의 미래 12.05.14
![]() |
댓글목록
나두한마디님의 댓글
나두한마디 작성일컬럼 잘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읍민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이 불만이지만 또한 그들의 애기도 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길게는 30십년 넘게 다른일은 모르고 한가지일만 고집하고 아니 고집이 아니라
이일 밖에 한것이 없어 다른일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좋은대우보다 일할수 있는 기쁜일이 계속 할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에휴..님의 댓글
에휴.. 작성일양평이든 어디든 근무환경 맘에 안들면 일단 단체로 배째라 식의 파업은
정말 없어져야 한단 생각이 드네요..
두리봉님의 댓글
두리봉 작성일필자님도 민군수와 같은식으로 제의하는 것을 종종 봤는데 겸손하네요..
파란등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고 먹자거리는 아직 못 가봤는데 꼭 들려봐야겠네요.
한번 같이 가자구요..
나도님의 댓글
나도 작성일그들도 양평군민 입니다.
무분별한 광고 및 악성댓글을 차단하기위한 방침이오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