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직 못다 찾은 13만명의 주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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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쳤다는 반공소년 이승복의 용기를 배우라고 가르쳤지만, 필자의 어린 마음은 반공소년 이승복이 겪었다는 참혹한 죽음이 몸서리치게 끔찍했을 뿐이다. 초여름밤,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올리고 만약 지금 무장공비가 쳐들어와 총칼을 들이대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칠 것인지, 살려달라고 싹싹 빌 건지를 두고 밤새워 고민하다가 가끔은 이부자리를 펑 적셔놓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 반공교육이 얼마나 강압적이고 선동적이었는지를 감안하면 마냥 팔푼이로만 몰리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비슷한 연배에서 그런 가위눌림을 겪은 사람이 필자 말고도 꽤 있는 듯하다. 비슷한 체험을 지닌 사람들과 비슷한 유년기를 공유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까닭이다.
지나친 반공교육은 훗날 전후세대의 6.25관(觀)을 비뚤어지게 만든 원인 가운데 하나다. 어느 정도 사리분별할 나이가 돼서 보니, 삼팔선 너머 사람들도 생긴 꼴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마빡에 뿔 달린 흉측한 괴물’ 쯤으로 각인돼 있던 ‘공산괴뢰군’ 이미지가 붕괴되면서 덩달아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정권의 입맛이 가미된 역사교육은 위험하다. 사실 그대로만으로도 동족상쟁의 책임소재와 전쟁의 비참함은 충분히 일깨울 수 있다. 전쟁의 미연방지가 국가와 국민 공동의 제1과제임도 아무 부작용 없이 각인시킬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의 이념논쟁은 과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지니고 있는지 심히 모호하다. 종북세력의 문제성도 심각하지만, 국가안보보다는 정치적타산을 우선하는 정치권의 공방이 또 어떠한 부작용을 잉태할지 참으로 위태로워 보인다.
이념논쟁보다 훨씬 위중하고 시급한 일은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 대한 국가적 예우다. 못다 찾은 6.25 당시 전사자 13만명이 이 땅 어느 골에 비석 하나 없이 60년 넘게 묻혀 있는지 찾아내는 게 국가적 예우의 기본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도부터 연인원 10만명을 동원해 발굴해 낸 유해가 6천5백구밖에 안 되니 어느 세월에 다 찾아 제 자리에 모실 수 있을는지 죄스럽기만 하다. 하릴없이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는 이 땅의 국회의원부터 싸그리 쓸어다가 방방곡곡에서 삽질을 하게 만들면, 때 이른 더위에 그만한 청량감도 없을 듯싶다.
안병욱 (yp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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